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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열리다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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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ne 4
새만금

한국 최대의 간척 사업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가 존재하는 새만금. 새만금실은 새만금 지역이 갖는 고금의 의미를 반추하여 그 역사성을 탐구하는 공간이다. 선사시대부터 남겨진 삶의 흔적과 바다를 통한 교류의 근거, 그리고 해양 요충지로서의 기록과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새만금 간척 사업이 시작되기까지 지나온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 01. 선사부터 고대까지
  • 02. 바다의 길과 국제교류
  • 03. 해양방어의 요충지
  • 04. 일제강점기 새만금
  • 05. 간척기술의 걸작, 새만금

전시구역안내

전시구역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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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선사부터 고대까지
조개무지貝塚는 옛날 바닷가 사람이 버린 조개껍데기, 물고기 뼈, 생활 도구가 쌓여있는 유 적이다. 조개무지에서 발견되는 자료를 통해 당시 생태와 환경, 인간의 생활을 알 수 있다. 새만금은 한반도에서 조개무지가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지역이다.
02바다의 길과 국제교류
청자의 생산과 운송
도로와 철도가 발달하기 전에는, 강이나 바다가 물자를 운송하는 주된 통로였다. 남해안 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많은 배가 새만금 지역을 거쳐 갔고, 최근에도 청자를 실은 침몰 선이 새만금 바다 아래에서 발견되고 있다. 군산 십이동파도十二東坡島 앞바다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배는 전남 강진康津에서 생산된 청자를 싣고 개경으로 가다가 침몰한 것으로 보 인다. 군산 비응도飛鷹島 근처 바다에서 청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03해양방어의 요충지
조선은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바닷가 요충지마다 성과 봉수대烽燧臺를 쌓았으며, 수군진水軍鎭을 설치해 전선과 병사를 배치했다. 해상 교통의 요충지였던 새만금 해역도 왜구의 침략을 피할 수 없어 여러 수군진이 설치되었는데, 위도진蝟島鎭과 고군산진古群山鎭 은 호남 북부 해안의 수군진을 총괄하기도 했다. 명량해전 후 이순신李舜臣(1545~1598)이 고 군산진에서 승첩 보고 장계를 올리고 수군의 전열을 정비하는 등 조선 후기 서해안 방어 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04일제강점기 새만금
김제는 전북 지역 최대 미곡 생산지로 군산 개항 이후부터 일제의 집중적인 개발 대상이 되었다. 군산은 김제·만경평야에서 생산된 미곡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전북 및 충남 지역 에 일본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성장시킨 식민지 거점 도시였다.
05간척기술의 걸작, 새만금
새만금 간척사업
1991년 11월 28일 새만금 간척 사업의 첫 삽을 든 후 2006년 4월 21일에 끝막이 공 사를 완료했다. 착공 후 약 19년 만인 2010년 4월 27일에 방조제를 준공하였다. 방조제 내부 개발은 2050년 완공을 목표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 사업 초기에는 농업을 중심으로 한 개발이 계획되었으나, 지금은 신산업, 신도시, 친환경 농업, 관광 산업, 국제 경제특구 가 조화되는 공간으로 개발되고 있다.
전시 주요사진
전시 주요유물
간 돌칼과 동주식검

한국, 청동기
원광대학교박물관

청자 흑백상감
국화무늬 잔과 잔받침

한국, 고려

「계유」가 새겨진
청자 상감 물가풍경무늬 대접

한국, 고려

중화제국전지

프랑스, 1735년
장 바티스트 뒤알드

만경현 고군산진 지도

한국, 조선, 1872년

부안 위도진 지도

한국, 조선, 1872년

군산 이사청 관내 주요지 명세도

한국, 대한제국, 1908년

새만금 방조제 최종 끝막이 공사

한국, 2006년
한국농어촌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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